익산은 고도(古都)로 지정돼 앞으로 옛 도읍의 모습을 서서히 복원해나갈 계획이다.

익산은 예로부터 마한백제의 중심지였고, 삼국시대 백제 때에도 수도는 아니었을망정 최소한 도읍지와 버금가는 지역이었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왕궁과 궁성, 왕실사찰과 왕릉이 있는 곳이 전국에서 네 군데밖에 없고, 익산이 이중의 하나이니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익산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런데 정부의 지역 차별로 인한 지방의 불균형 발전과 인구의 지속적 감소에 따른 전북지역 정치권력의 쇠퇴 및 위상 약화로 인해 역사문화유적의 발굴작업이 지체되거나 복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은 지역민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뿌리는 깊은데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는 나무와 같고, 문화적 자존심은 강하지만 내세울 수도 없는 처지가 오늘의 익산시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익산을 고도로 지정하고 전라북도와 함께 익산의 역사문화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있도록 노력한다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흡한 것은 시민들이나 외부 관광객들이나 익산의 역사문화적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상징물이 현장에 없다는 것이다.

미륵사탑은 가장 오래된 석탑이며, 서동요 또한 현전하는 대표적인 향가로서 교과서에 실려 국민들이 익히 알고 있지만 익산에 와 보면 황량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고 중국 등 외국인들의 감동을 끌어내는 것은 역부족이다. 한 마디로 관광인프라가 전혀 돼 있지 않다.

그럴망정 문제는 단 한가지라도 외부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륵사 서탑이 곧 복원될거라지만 이미 식상한 것이 돼 버렸다.

익산은 무엇인가 시민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끌어올리고 손님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지역의 역사문화유적을 꼼꼼히 챙기는 것도 좋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문화재 복원사업을 벌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절실하다. 

용역이 요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왕궁축산분뇨로 인해 오염된 주교제를 비롯한 3개 소류지와 익산천을 정비하기 위해 익산시가 올해 '익산천 생태하천 및 주교제 등 생태습지 복원사업 기본 ·실시설계' 용역을 발주한 가운데 지난 16일 기본설계에 대한 2차 자문회의를 왕궁축산분뇨처리장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자문위원들의 따가운 질타가 이어졌다. 자문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본설계 용역을 맡은 업체에 대해 "생태의 기본원리도 모르고 만든 계획서"라고 지적했다.

자문위원들은 용역업체가 내놓은 중간보고서에 대해 도대체 이 계획이 조경계획인지, 공원조성계획인지, 생태정화계획인지, 수질개선계획인지, 하천조성계획인지 모를 정도로 목적도 불분명하고 그 목적에 따른 단계적 계획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지역 학계와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왕궁축산단지 분뇨 무단방출로 인한 토양오염과 주교제를 비롯한 저수지 및 익산천 오염, 이를 원인으로 한 새만금 수질오염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용역업체가 내놓아야 할 결과물은 당연히 오염원 제거 및 원래 상태의 복원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용역업체가 내놓은 중간보고서를 보면 누가 보아도 조경사업인지, 하천 조성사업인지 모를 정도로 내용이 어수선하고 예산만 낭비될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데에는 익산시와 용역업체 모두에 책임이 있다. 일반적으로 용역을 발주할 경우 발주기관은 과제를 제시하는데 익산시는 불분명한 방향을 제시했고, 용역업체 선정을 잘못했다.

명확한 목적과 그에 따른 과정과 단계 및 과제를 제시해야 하고, 또한 정밀한 진단 및 지역 학계와 전문가들의 의견들 들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익산시의 불분명한 과제 제시와 잘못된 업체선정으로 자칫 예산만 낭비될지 걱정이 앞선다.

불분명한 과제가 제시됐다 하더라도 업체는 명확한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데 실력이 부족한 용역업체는 어설픈 결과물을 내놓게 된다.

이번 설계용역은 원칙적으로 오염원인 분뇨의 무단방출을 막는 것이 첫째 과업이었는데, 시는 이 문제를 소홀히 다뤘다.

당장 내년 초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될 것인데, 익산시는 왕궁 축산인들의 마구잡이 무단방출을 막을 구체적인 방안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생태습지를 조성한다 해도 다시 오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만금 수질문제 때문에 사업을 해야 하고, 그러자니 국도비가 필요하니 형식적으로 용역을 해놓고 나중에 수백억원의 사업비를 낭비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