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동반한 장마가 덮치면서 담장이 허물어지는 등 여러 피해가 발생했다. 아무리 사전에 예방을 철저히 한다 해도 천재지변으로 발생하는 일 모두를 대비할 수는 없는 법이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일어난 일은 신속하게 복구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복구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로 사람의 생명이다. 사람의 목숨 앞에서는 얼마간의 피해를 감수한다는 것도 그릇된 일이 되고 만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목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중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곳이 있다. 발암 마을이라고 불리며 죽음의 공포 속에 살고 있는 함라면 장점마을이다. 주민들 대부분이 암투병과 원인모를 병치레를 겪고 있으며 지난달에만 2명의 주민이 암 등으로 죽고 1명은 피부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환경부나 익산시의 보살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환경부가 진행하는 역학조사 결과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 오늘날 행정의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장마에 대한 대비도 없었다. 발암물질 배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비료공장의 지붕이 뚫려서 비가 새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했다. 폭우가 쏟아지자 역시 상당량의 침출수가 발생했다. 외부로 흘러나간 침출수는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된 바 있는 저수지로 향했다.

주민들은 비만 오면 공장에서 시커먼 물이 내려오는 것을 수차례 봤다. 집단 암 발병사태가 벌어지고 나서는 그 물은 죽음을 연상시켰다. 이에 큰 비가 오기 전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살려달라는 목소리나 같았다.

그러나 무방비 상태로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가 공장 지붕을 뚫고 곧바로 공장내부로 들이쳤다. 공장 폐쇄 후 원재료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공장은 침출수를 만들어내는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태풍을 동반한 비가 지나간 뒤 언제 다시 장마전선이 물을 품고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재선에 성공한 정헌율 시장은 취임식을 취소한 그날 장점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시장이라고 해서 내리는 비를 멈추는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이날 침출수를 퍼내거나 외부유출을 막기 위한 방지턱을 세우라는 지시는 사후약방문이었다.

비가 내리기 전에도 그는 시장이었으므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임시로 지붕을 수리해 침출수 발생을 억제하고 그래도 유출 가능성이 있으므로 외부 방지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주민들은 그런 행정에 실망이 크다. 키우는 닭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자조하기도 한다. 닭의 경우 단 몇 마리만 시들해도 바로 나와서 검사하고 대책을 세우고 조치하는 세상이다. 조류독감을 대비하기 위한 매뉴얼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매뉴얼도 없다는 게 문제다. 바로 이웃 마을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국가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이번에 내린 비로 시커멓게 흘러내렸던 침출수가 바로 그 증거다.

독가스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게 독가스가 맞는지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마시고 있으라는 얘기다.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위험인자를 차단시키고 피해상황을 점검하며 치료기회를 주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익산시는 시민들의 생명을 두고 상식적인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생명이 걸려 있는 일에도 서류와 절차가 우선인 것은 경악스러울 정도다.

사태 이후 조사과정에서도 피해를 입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보살핌은 없었다. 암이 있는지, 혹은 어떤 질환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그들을 위한 치료는 없었다.

단지 조사 대상일 뿐이었고 치료는 본인이 알아서 해야 했던 것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 떨고 있어도 치료지원에 대해서는 무대책이다. 장점마을은 보건진료소조차 없는 의료취약지역이다.

환경부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을 배제하고 역학조사의 중간발표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사 결과에 생명이 걸려 있는 직접적 피해자의 심정 따위는 괘념치 않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따로 설명회를 열겠다고 밝힌 것도 우스운 일이다. 중간발표에서는 주민들이 몰라야 할 것이라도 있다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겪었던 국가의 무책임함과 피해자에 대한 배제 행태가 그대로 장점마을에서 재현되고 있다.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생명보다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우선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직접적인 피해는 주민들의 신체를 상하게 하지만 행정의 무성의한 대응은 마음까지 다치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그러나 아직 많은 공직사회는 ‘사람이 먼저’라는 말을 가벼이 여기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