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이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건 당연한 임무다. 만약 온갖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위험에 빠졌다면 즉시 방법을 강구해 시민을 위험에서 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칭찬받을 일도 욕을 들을 일도 아닌 본연의 이치다.

그러나 만약 시민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행정은 무어라고 해야 마땅할까.

위험을 목도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것은 곧 시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보호해야 할 시민을 위험 속에 빠뜨리는 것을 두고 유명무실한 행정이니 직무유기니 하는 것은 부족하다. 그런 행정은 ‘과히 몹쓸 행정’일 뿐이다.

익산시는 지난해 11월 4일 지역 내 4곳의 인조잔디 운동장에 납과 크롬 등 암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 안전기준의 수십 배를 초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사실을 인지한 익산시가 취한 조치는 뭐였을까. 경악할 만하게도 익산시의 조치는 ‘없다’였다.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라고 위험 표시를 하고 접근을 막는 법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기본 조치다. 그런데 익산시는 과히 억지스럽게도 그런 기본 조치도 취하지 않고 수개월을 그대로 방치했다.

그러는 동안 납 범벅 운동장은 그대로 익산시민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됐다.

누군가는 그 위에서 공을 차고 또 다른 시민은 산책을 하며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중금속을 들이마셨다는 얘기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했지만 사실상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행위였다는 건 공포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익산시는 올해 중앙체육공원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치렀다. 수백,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인조잔디 위에 열린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 인조잔디는 납이 기준보다 75배 초과했고 6가크롬의 경우 14배 초과했다. 아이들은 몰랐고 아이들과 동행한 어른들도 몰랐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익산시 행정밖에 없었다. 자칭 행정의 달인이라는 정헌율 시장을 비롯한 시정 전체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익산시는 상급기관 지침이 없었다는 말을 하며 변명한다. 상급기관의 지침이 없으면 익산시민이 중금속 바다에서 헤엄을 쳐도 가만히 놔둘 심산이란 뜻으로 들린다.

익산시 공무원은 취재가 시작된 뒤 부랴부랴 관련 안내를 한다고 부산을 떤다.

달랑 현수막 몇 장으로 익산시민의 건강이 보호된다고 믿는 행정의 모습은 불신이 아니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당장 눈앞에 일어나는 일조차 책임 회피와 일단 모면하려는 행태는 몹쓸 행정이란 말도 부족하다. 익산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민들게 사과해야 한다.

당장 모든 경로를 통해 시민들에게 인조잔디의 위험을 알리고 접근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