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대한 양의 독극물이 낭산지역 폐석산에 매립된 사실이 제3의 기관에 의해 밝혀졌다. 익산시는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는 환경 파동에 노출됐다. 시시각각 지하수로 스며드는 독극물을 제거하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또한 지하수가 어느 정도 오염됐는지를 알아야 사후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하수 상태 측정도 화급을 다투는 일이다. 익산시와 낭산 폐석산 주변지역 주민들이 함께 구성한 환경오염 방지대책 민-관 협의회는 그런 당위에 입각했다. 이 협의회의 운용 과정은 정헌율 시장의 위기관리 능력과 협치 마인드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취임 후 업무파악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터진 사태이기에, 과거에 대한 책임을 정 시장에게 묻는 것은 과도한 일이겠지만, 사후처리 책임은 정헌율 시장에게 있고, 이번 폐석산 재앙에 대한 뒤처리야말로 정 시장이 행정전문가로서의 차별성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특히 정 시장은 첨예한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주민의 뜻대로'를 강조하고, 실제로 주민의 뜻을 최종 결정에 반영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한 정 시장의 시정운영 기조는 이번 폐석산 사태라고 해서 다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협의회가 삐걱거리고 있다. 주민들은 '신속성'에 방점을 찍고 전문가들과 함께 사태 해결을 고민하지만, 익산시 공무원들은 자꾸만 미적거리는 양태를 보인다. 협의회는 지난 7월 20일 1차 회의를 개최하고 '종합대책'을 수립해 2차 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7월 27일 열린 2차 회의에서는 익산시가 마련한 종합대책에 대해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이 종합대책에는 폐석산에 매립된 독극물 강제 제거 즉 원상복구에 대한 대책이 없었고, 해당 폐석산 외 3개 지역에 대해서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주민들은 낭산 일원에 산재한 모든 폐기물 매립장을 조사해야 한다고 맞섰다. 또, 익산시는 문제의 폐석산 주변 지역에서 지하수를 이용하는 관정 20개소의 수질을 조사하되 필요시 별도로 시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주민들과 전문가들은 전문 드릴 시추장비를 통해 코어 시추와 지하 침출수 시추를 병행해야 환경오염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익산시의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종합대책으로는 정밀한 전수조사 및 환경오염과 관련한 과학적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는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익산시는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수습이 지지부진해질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은 4인의 환경오염 대책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확정한 새로운 낭산(주변)지역 폐기물사업장 환경오염 정밀 실태조사 계획안을 들고 익산시 문을 두드렸다. 3차 회의전에 실행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익산시는 주민들이 제출한 계획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익산시에서 별도의 종합대책안을 마련해 민-관 협의회에 제출한 뒤, 두가지 안을 놓고 토론을 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말마따나, 전문가들이 제출한 계획에 대해 토론하고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익산시가 별도의 안을 내 맞서겠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익산시가 주민들에게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 있다는 뜻이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충돌을 유발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 저의가 뭘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익산시가 고유의 권한을 주민들이 침해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발로라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익산시에 맡겼던 일을 익산시가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민-관 협의회의 주민들은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이다. 국민이 자기 생명을 스스로 지키겠다는데 공복들이 그에 거슬러야 할 일이 무에 있는가. 협치는 체감 행정을 씨실로 한다. 주민들이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데 어디서 날실을 구하겠는가. 가뜩이나 불신받는 행정이다. 게다가 협치를 지향하는 정헌율 시장과 공무원들은 따로국밥이 아닌가. 정 시장에게 조직 장악력이 없거나, 정 시장이 앞에서는 '주민 뜻대로'를 표방하면서 뒤로는 행정편의주의에 경도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정 시장이 만약 표퓰리즘적인 협치를 지향한다면, 그러한 이중성으로는 필경 위기관리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민-관 협의회의 파행은 출범한지 갓 4개월 된 민선 6.5기의 민낯이다. 부끄럽지 아니한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