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전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실이 법정에서 규명되고 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돼 열린 재심법정이다. 검찰이 재심 결정에 불복하며 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국 재판이 열리게 되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당시 현장을 지나다 경찰의 덫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주로 회자됐다. 재심이 받아들여졌다는 건 이 남자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공산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루 아침에 살인범이 된 16세 소년은 10년 형을 선고 받고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그는 옥살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얼토당토 않은 살인범 꼬리표는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는 5년 여 동안 경찰의 강압과 구타, 증거부실 등 수사과정의 문제점을 법원에 소명해 결국 재심 결정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현장에서 체포한 소년을 경찰서로 데려가지 않고 여관으로 데려간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은 경찰관의 권리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자체로 '감금'이고, 3인조로 팀을 이룬 경찰관들에게 여관은 왜 필요했던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재구성하면 이렇다. 택시기사 유 모씨(42)가 수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당한 현장이었다. 경찰들은 사건 현장을 살펴보다가 지나가던 오토바이 배달 소년을 불러세웠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정차되어있는 택시와 피투성이의 기사, 출동한 경찰관들을 기웃거리기 마련일 것이다.

경찰관들은 소년이 수상하다고 여겨 이것 저것 물었고, 소년의 몸과 오토바이를 살폈다. 소년은 갑자기 닥친 일에 말을 더듬으며 벌벌 떨었다. 하지만 범행은 일관되게 부인했고, 흉기도 나오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불길처럼 추론이 일었다. 그런 조우란 한 순간 경찰관들로 하여금 그릇된 선택을 하게 할 수 있다. 어리고 떠돌이 같으며 초라한 소년을 다그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행위가 노출되면 안되는 이유였다. 이들 중에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하면 특진할 수 있다. 만약 잘못된다 해도 누가 저런 놈의 말을 믿겠느냐는 등의 회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모든 것은 그들 뜻대로 적중했다. 소년을 족쳤더니 결국 경찰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서는 완성됐고, 판사는 또 이 허접하고 어설픈 공소사실을 인정해 소년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러데 이같은 추론은 실체적 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시 3인조 경찰관 중 막내였던 경찰관 A가 재심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후 자택에서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판에서 수사과정에서의 폭력이나 가혹행위는 부인했지만, '여관 조사'는 인정했다.

여관으로 데려가 범행사실을 추궁했지만, 불법체포나 감금 등이 절차상 위법에 해당하는지를 당시에는 몰랐다고도 했다. 이제 경위 계급장을 단 경찰관 A는 법정 진술을 마치고 동료와 술을 마셨다. 귀가한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괴롭다. 죽고 싶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임시로 저장한 채 이승을 떴다.

그의 자살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재심이 열린 이후 그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많이 힘들었다. 죽어야 끝나나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니, 한 인간의 삶 그 밑동을 잘라버린 악행을 뼈저리게 후회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 대가가 일계급 특진이라면 그것은 또 얼마나 가벼운 일인가. 그러기에 더욱더 자신의 삶이 비참했을 것이다.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까지 그가 주변에 보여준 위축된 모습은 그날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망하며 비극적인 것인가를 방증한다.

이 사건은 너무나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릇된 공권력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또 개인의 삶을 희생양으로 삼아 얻는 대가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시간은 결국 권선징악을 명징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끝내 진실을 숨기고 떳떳하게 하늘을 보는 A와 한팀이었던 다른 경찰관들의 양심은 금수와 같을까.

우리는 그릇된 공권력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공권력을 악용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그 폐해는 공조직을 범죄조직으로 전락시킬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제3의 피해자는 속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