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가 모현우남아파트의 103세대(300여명) 거주민들에게 긴급대피명령을 내렸다. 민선 6기 들어 특별히 구성된 우남아파트 TF팀의 안전점검 결과 심각한 재난안전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다.

한순간에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1970년 4월의 와우 시민아파트(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붕괴 사건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와우아파트는 당시 평당 건축비가 1만원도 채 안되는 부실시공 아파트였다. 모현우남아파트 역시 같은 원인으로 수년 전에 재난안전 E등급을 받은 지극히 위험한 상태의 구조물이다. 와우아파트 대참사는 건물 내에 있던 70여명 모두를 덮쳐 33명이 사망했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점에서, 수년 동안 불안에 떨어 온 주민들을 대피시킨 것은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고 동시에 자치단체의 역할과 기능을 재조명하는 일대 전기가 될 만하다.

그러나 가구당 120만원 한도에서 이주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재난안전관리기금 말고는 익산시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긴급대피명령 발동은 수많은 논란을 낳고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높다.

또한 익산시가 해결 불가능한 사안을 끌어안고 아무런 실익도 없이 행정력만 낭비할 공산이 높다.

당장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재건축파와 보수·보강파로 나뉘어 우왕좌왕하고 있다.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는 상대다수가 뜻을 같이했지만, 막상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니 이주부터가 쉽지않다. 4년 전 부실시공한 우남아파트로부터 7억4천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받았지만, 그동안 소송비용 등으로 절반 이상이 소진되어 버렸다.

손해배상금을 분배하더라도 가구당 4백만원도 채 되지 않는데다, 거주민들 대부분이 우남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이미 담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담보대출은 받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 건물 붕괴 걱정으로 날을 지새우던 주민들은 이제 불안한 미래 때문에 떨고 있다.

게다가 열악한 입지조건과 과소한 규모, 철거 후 건축 등 각종 악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마당에서 과연 선뜻 나설만한 재건축 업체가 있을까에 대한 현실적인 벽도 주민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우남아파트를 통해 보수·보강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당장 이주할 주택이나 아파트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고, 재건축에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긴급대피명령을 발동한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이 뼈아픈 이유다. 주민들은 오히려 익산시의 이번 조치로 아파트의 이미지 손상과 가격하락만 초래했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반 이상의 주민들이 이주에 동의했지만, 추가비용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도장을 찍는 등 사전 정보도 불투명했던 것으로 들린다.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강제 행정행위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익산시는 향후 뚜렷한 대안도 없이 모현우남아파트 주민들의 다종다양한 민원, 특히 실현 불가능한 요구민원에 노출될 공산이 높다. 또한 이 같은 선례는 유사한 조건의 아파트 주민들을 고질 민원 주체로 만들 공산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