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익산시 예산안을 심사한 익산시의회 의원들의 태도는 어느 때 보다 엄숙했다. 재정비상체제를 선언한 익산시의 의지에 발맞춰 불필요하거나 급하지 않은 예산을 가려내는데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의회가 먼저 자기 밥그릇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의회는 의원들에게 배당되는 1인당 1억원 가량의 재량사업비 전액을 삭감했다. 또 의회에서 사용하는 언론 홍보비도 전액 삭감했다. 결연한 각오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각 상임위원회는 소모성·선심성 예산 그리고 무원칙한 예산들을 적출해 총 94억원을 삭감했다.

이렇게 의회가 1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생산적인 곳에 쓸 수 있도록 물길을 돌린 데 대해 우리는 경의를 표하며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의회 일각에서는 시장, 혹은 업자, 공무원들과의 친소관계에 휘말려 모처럼 조성된 바르고 가치있는 의정활동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례도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익산시가 의회에서 삭감한 94억원보다 많은 96억원 규모의 수정예산안을 예결위에 제출한 초장부터 그런 부적절한 움직임들이 감지됐다. 결국 이는 표면화되고 말았다. 기획행정위원회에서 전액 삭감한 익산시립교향악단 설립 운영 예산 10억원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4억원을 부활시킨 것이다.

해당 예산은 이번 의회의 각 상임위원회 삭감액분 가운데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그래서 예결위가 시립교향악단운영 예산 일부를 일방적으로 부활시킨 것은 기획행정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의회 전체의 의견을 거스른 셈이 됐다.

대표적인 불요불급한 예산, 혹은 선심성·소모성 예산인 익산시립교향악단 운영 예산을 상대 다수인 예결위원들이 부활하시키고자 할 때 격론이 벌어지고 진통을 겪은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예산이 다수 의견에 의해 부활되는 과정에서, 당초 "익산시립교향악단을 설립하게 되면 매년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무엇보다 재정위기 상태의 익산시 형편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상임위원회의 삭감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박보다는 몇몇 의원이 스크럼을 짜고 부활시키는 것을 작심하고 밀어붙이는 행태에 한 여성 의원이 눈물까지 보이는 등 파열음이 일었다.

지난 19일 본회의를 앞두고 익산시의회 김충영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갑자기 변심한 동료의원에 대해 "눈 뜨고 같이 존재한다는 게 창피하다", "상임위 부결 예산을 예결위에서 일부 의원의 의견을 빌어 부활한 것은 정책의 선·악을 떠나 코미디에 불과하다. 탐욕과 이익을 숨긴 결국 졸부의 외침이었다"고 평가하며 울분의 밤을 지냈다.

19일 본회의에서 김정수 의원 등이 상정한, 예결위에서 부활된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정동의안이 가결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방자치 실시 이래 가장 뚜렷하게 대의기관의 전범을 보여주는 익산시의회 이미지가 일부 의원들에 의해 손상되는 것을 막은 데 대해 안도한다.

그런 대다수 의원들의 열정과 신념에 갈채를 보낼지언정,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매우 우려되는 국면이다. 모든 익산시 의원들이 더 이상의 혼란을 갈무리하고 새 질서에 동참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