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18이 왔다. 오늘로 서른한 번째, 1980년 광주시민들과 민주주의를 피로 물들인 그 날은 매년 어김없이 온다. 본지의 창간일이기에 몹시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이기도 하다.

차분한 마음으로 언론과 민주주의의 일천한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부패와 거짓과 부정에 맞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희망과 미래를 열어가려는 약한 사람들의 연대와 투쟁은 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우는 용기였다.

자기기만의 언론역사

1961년 5월16일은 민주주의를 거부했던 언론의 기만과 비열함의 거대한 물줄기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군부가 정권을 잡게 되자 언론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군사반란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눈앞에 두고 손가락을 들고 반민주적 쿠데타라고 해야 할지, 정당한 혁명이라고 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이런 갈등도 잠시, 당시 독과점적 지위를 누렸던 주류 언론들은 그들이 세운 민주적 정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 스스로가 국민과 함께 독재와 부패에 항거하며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고 4.19혁명을 통해 이룩했던 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인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군인들이 관객이 되고 언론이 마당 한 가운데서 자아비판을 하는 모습이었다.  

쿠데타 이튿날인 5월 17일. 하루 만에 언론들은 쿠데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생존을 모색한 언론들은 쿠데타가 피를 흘리지 않고 성공한 반란이었기에 다행스러운 무혈혁명이라고 말했다.

또한 군사반란은 구국운동이었다. 국민들이 4.19혁명을 통해 세운 민주정권은 부패하고 무능했기 때문에 군사 쿠데타는 정당했고, 결국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찬양했다.

때문에 그 결단을 행동으로 옮긴 박정희는 영웅적 지도자였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우국지사였다.

이미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마당에 반란의 정당성 논란은 애초부터 필요가 없었다. 주류 언론들이 단 하루밖에 고민하지 않은 이유였다.

이렇게 언론의 자기기만의 역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됐다. 

미국의 타임지는 그해 8월 1일자 기사에서 '한국의 신문은 벙어리'라고 말했지만 한국 언론은 벙어리가 아니라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군악대'가 돼가고 있었다. 

이로부터 18년간 권력과 주류 언론은 밀실야합을 이어갔다. 철저한 검열을 통해 보도되는 기사의 이면에는 권언유착이라는 달콤한 향연이 있었다.

주류언론의 부패 

권언유착과 정경유착으로 부패한 군사정권은 1980년 5.18의 목전에서 서서히 유신체제의 종말을 알리고 있었다.

'79년 10월 16일 부산과 마산, 창원에서 유신체제와 독재 철폐를 요구하는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혼란의 와중에 군사정권의 핵심인사가 정권의 총수를 권총으로 머리를 쏘았다.  10.26사태였다. 국민은 잠시 혼란스러웠으나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12월 신군부세력이 등장하면서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좌절을 맞봐야 했다. 이듬해 5월 18일. 신군부의 정권 장악에 저항하며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민주항쟁은 관객조차 없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신군부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 광주는 섬으로 전락했고, 진실은 외면 받았다.

신군부의 정권 장악을 자사의 세력 확장에 이용하려 했던 당시 주류언론은 광주시민들을 남파된 북괴간첩과 불순분자들의 사주에 의한 폭도로 규정했다. 언론사는 자율정화라는 미명 아래 통폐합됐고, 정론지는 폐간됐다.

이는 정론에 대한 배척이었지만 신군부는 비열한 언론의 충성을 담보하기 위해 특혜와 특권도 함께 주었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주류언론들은 신군부와 밀월을 즐기며 한국사회의 여론을 지배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권력에 아부하는 주류언론의 독과점이 심화됐고, 언론사간 충성경쟁과 이윤추구 경향은 날로 심해져갔다.

정권에 순응한 언론인에 대한 혜택으로 기자문화가 타락했고, 각종 당근을 제시하면서 주류언론은 특권계급 화됐다. 진실과 거짓, 부패와 반부패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부패와 거짓이 주류로 자리 잡은 이유다. 

정의를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

본지는 언론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진실 앞에 부끄러웠던 과거와 중요한 순간마다 준엄한 심판이 이뤄졌던 역사 앞에서 겸손하며, '정의와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 수호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어어 갈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부패와 거짓과 부정, 권총 앞에서 저항했고, 온갖 회유와 특권 앞에서 당당했던 수천 명의 양심적 언론인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다. 그들의 희생으로 현재의 자유가 주어졌기에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