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개인이나 단체, 법인 등에 보조금을 줄 때 아직도 시민의 혈세를 자신의 쌈짓돈 취급하는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익산시청 감사관실이 지난 4월 자체감사를 통해 2009년부터 올해 초까지 집행된 보조금사업 1천28건을 조사한 결과 50건 가까운 부당행위가 적발됐다. 이번 감사에서 보건소와 상하수도사업단은 제외됐다.

감사결과를 보면 보조금 대상 선정단계서부터 보조금 지원과정, 보조금을 쓰고 난 후 정산 처리 등 모든 부문에 있어서 허점을 드러냈다.

특정인이나 단체를 미리 선정해놓고 형식적으로 심의하거나 사업계획서상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고 보조금을 주고, 현장 조사 없이 달라는 대로 보조금을 주거나,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제3자에게 예산을 지급하는 행위도 있었다.

보조금을 다 쓰고 난 다음 시청에 제출하는 서류가 제대로 됐는지, 경비가 계획대로 올바로 쓰였는지 검사하지 않고 통과시켜 준 것도 여러 건이나 됐다. 보조금을 받은 사람이 정당하게 시청에 반납해야 할 이자수입을 수납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보조금을 줄 것으로 미리 약속하고 공사를 실시한 후 나중에 예산을 지급한 사례가 여러 건 적발됐고, 보조금을 사용할 곳이 아닌 곳에 지출했어도 눈감아준 사례가 있었다.

계획보다 사업 량이 줄어들었는데도 보조금을 삭감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지급하고, 개인이나 단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제대로 냈는지 확인하지 않거나, 반드시 보조금 전용카드를 사용해야 하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에도 그냥 넘어갔다. 시장의 승인을 얻지 않고 사업계획을 변경해 보조금을 지출하거나, 아직도 현금을 지급 한 후 나중에 간이영수증을 제출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투명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부당행위 적발 건수를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5%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록 한 건이라도 천금같이 여겨야 할 시민의 세금을 공무원이 잘못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적발건수는 상상 외로 많은 수치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안심하고 공무원들에게 재산관리를 맡길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공무원 개인의 돈이라면 이렇게 허술하게 쓰겠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익산시는 현재 공무원 청렴도 향상을 숙제로 삼고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청렴도 향상 과정에서 당장은 시끄럽더라도 부적절한 사례의 전반적인 공개와 함께 엄격한 신상필벌로 체질화된 향리의 습속을 없애야 한다.

익산시장은 약자 편에 서야

익산시 읍·면지역 환경미화원들이 최근 익산시청 현관에 쓰레기와 오물을 투척하면서까지 읍면지역 환경미화 업무의 민간위탁을 철회하라고 강력히 요청하고 나섰다.

익산시의 쓰레기를 청소해야 할 미화원들이 오물을 시청사에 투척한 사건은 전례없는 일이라 익산시의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보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사건은 익산시 책임이 크다.

익산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과 환경미화원들 간 소통의 부재에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환경미화원들은 2009년 익산시장이 함열읍에서 가진 환경미화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절대 민간위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거짓말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약속을 했는지, 만약 했다면 그 때와 지금의 환경은 어떻게 바뀐 것인지 시장은 해명해야 한다.

민간위탁 공고를 내기 전 당사자인 환경미화원들과의 충분한 토론이나 대화가 없었다는 것도 문제다.

시 독단으로 결정해 놓고 위탁 공고일 3~4일 전에 개별 설득작업에 나섰다는 것이다.

사전에 읍면지역 환경미화업무에 대한 공청회도 갖지 않았다. 힘 없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한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민간위탁을 통한 경영의 합리화를 꾀한다는 익산시의 입장도 설득력은 있다. 그동안 읍·면 지역 내에서 선발돼 혈연과 지연에 묶여 환경미화업무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는 익산시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근무태만이 이어져왔다면 이를 감독하지 못한 익산시의 책임이 더 크다. 그동안 관리감독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따져보지 않고 업무의 효율성과 경영의 합리화라는 이유로 운영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분명 자기모순이다. 특히 소통과 화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익산시가 물리력을 동원해 익산시청 정문과 후문을 자동차로 가로막아 소통을 스스로 막은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26명의 미화원들을 막기 위해 이런 일을 계획한 시의 옹졸함은 목적을 불문하고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전에 익산시가 충분한 대화의 장을 마련했어야 했다.

부시장은 환경미화원들에 대한 직권면직도 불사하겠다며 압박을 가했다. 속상해서 한 말이겠지만 힘 있는 사람 앞에서도 과연 이런 말이 나왔을지, 만약 일반직 공무원이 대상이었다면 어땠을지 의문이다.

30일로 예정된 익산시장과 환경미화원들의 만남에서 이 시장 스스로 약자의 입장이 되어 소통의 대화를 펼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