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고은랑의 책세상 > 606호 이디스 워튼의 환상이야기

606호 이디스 워튼의 환상이야기

▲ 이디스 워튼

◎ 이디스 워튼은 여성이 예술가, 특히 작가의 삶을 추구하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193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75세에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쉬지 않고 집필 활동을 펼쳤다. 섬세한 문체와 치밀한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뉴욕의 부유하고 강력한 가문에서 태어난 이디스 워튼은 뉴욕 상류층의 삶과 그 사회체제 아래 여자들에게 가해진 압박과 편견, 그리고 현대화가 초래한 가치관의 변화와 기존 질서와의 충돌을 사실감 있게 표현했다. 1862년 뉴욕 명망가인 존스 가문에서 태어나 1866년부터 1872년까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878년 처음으로 시집을 출간했다. 1885년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애정없는 결혼을 했고 불행한 결혼생활과 사회적 지위와 작가로서의 야심 사이의 갈등으로 1894년부터 심각한 신경쇠약을 앓았다. 1차 세계대전 때에는 프랑스에서 전쟁 구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이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20년에 발표한 「순수의 시대」로 1912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녀는 1927년, 28년, 30년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쌍둥이 소설로 불리는 「미선프롬」과 「여름」을 통해 미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로 자리매김 했으며, 이외에 「환락의 집」, 「암초」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1913년 남편과 이혼하고 1937년 파리에서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에서 살았다.

◎ 독자들의 한 줄 생각 & 한 줄 느낌

· 우와, 곱씹을수록 은근히 무서운 작품이네요.

· 열린 결말의 공포스러운 예. 무한한 상상으로 이야기 후반 부분에는 소름이 돋는다.

· 대놓고 무서운 건 아니지만 읽고나서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8편의 단편소설.

· 유령, 영혼, 사후세계를 이야기하는 고딕소설의 고전.

· 고전적인 초자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단편소설들.

· 고딕, 환상, 미스터리한 이야기들로 즐거움을 주는 이디스 워튼의 단편 모음집.

· 소설이 작가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환각 증세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니까 내용적으로 더 현실감이 있었다. 소설은 곧 작가의 상상이고 체험이자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특함이 있었던 흥미로운 소설.

◎ 책 속에 밑줄긋기,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 한 시간, 두 시간이 흐르고 한 주, 두 주가 흐르면서 불길한 상상의 힘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이라는 가마솥에서 그칠새 없이 끓어오르는 갖가지 새로운 문제가 마음속 중심을 차지하며 천천히 기존의 걱정과 불안을 밀어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남편이 움직였는데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그녀는 온몸을 가볍게 떨기 시작했다. 그 어떤 소리보다 침묵이 두려웠다. 남편이 소리를 전혀 내지 못한 게 아닐까? 지금 그녀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된 걸까? 극도로 지친 마음은 상상할 수 있는 불길한 일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 가끔은 우리 모두 죽음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놀라움과 황홀감을 느꼈다.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투명한 유리알처럼 맑은 하늘이 보낸 소환장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약속을 읽었다.

◎ 책 소개

·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이디스 워튼은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유령과 영혼, 사후세계 등에 관한 고딕소설을 통해서도 탁월한 글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디스 워튼은 어린 시절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으나 겨우 회복하고 재발하기를 반복했다. 그녀 자신은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환각 증세를 겪은 뒤로는 그것들을 두려워했다고 고백했다.

· 이러한 트라우마를 통해 워튼은 비이성적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유령에 관한 두려움을 고딕소설을 통해 소름 끼치도록 묘사했다. 직접적인 묘사를 배제하고 간접적인 상황 전개로 공포감을 극대화하고, 다소 충격적인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반전을 선사한다. 선명하고 잘 짜인 전개 과정에 혼령과 사후세계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8개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 은랑 생각

· 환상이야기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어봤다. 전반적인 내용은 책의 제목과 달라서 왜일까 했는데, 알고 보니 원서의 제목이 고스트 스토리로 원제목과 같이 유령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래된 소설이다 보니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낯익은 이야기들이었으나 작가의 필력이 좋아 읽는 동안 몰입감이 더해졌다. 각각 다른 단편의 느낌을 갖고 있어 시간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고 오히려 끝나는 게 아쉬워 조금 더 읽고 싶을 만큼 재미있었다.
과거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등장인물이나 배경 묘사가 아름다워 읽는 맛이 있었다. 또 아름다운 배경과 달리 이야기의 진행은 음산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묘한 이야기로 대조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각각의 단편들마다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 유령이야기가 기본 바탕이지만 환상이라는 키워드에 맞게 뭔지 모를 느낌이 드는데, 각 이야기마다 이렇게 결론이 날거라는 예상과 달리 단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을 만큼 아무도 알 수 없는 결론을 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그 결론이 터무니없거나 뜬금없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개연성을 가진 결론이라 짧은 이야기지만 푹 빠져드는 묘미를 가지고 있다.

· 단편들이 너무 뻔하지 않은 스토리라 좋았고,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점을 빼고도 이야기 속에 주인공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한 편 한 편 읽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기발하고 독특한 책, 근래에 쓰여진 책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되고 재미있다. 작가의 문체나 전개 방식이 마음에 들어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