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 반 공기 반.. 얘들이 말을 해 줘요

별로 할 말이 없다며 처음에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던 귀농 2년차 한경자 씨(44, 여)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는가 싶더니 딸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마치 자식 자랑하듯 웃으며 귀농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직 미혼인 그에게는 딸기가 곧 자식인 듯했다.
매일 새벽 6시 반에서 7시 사이 동틀 무렵 하우스에 나와 해질녘 무렵까지 온종일 하우스를 집 삼아 딸기 키우기 삼매경에 빠져있는 그는, 언제나 딸기가 언제 어떻게 시시각각 변하는 지가 주 관심사다.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물을 주고, 환기를 시키고, 영양분을 주고 하는 것들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바로 그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이란다.
아직도 딸기에 대해 뭐라 이야기해 줄 것이 없는 초보라며 손사래를 치는 그는, 지금보다 더 초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선도농가의 방법이나 농업기술센터, 또는 작목반 등에서 배운 대로 하는 것밖에 몰랐다.

그러기를 수개월, 어는 순간부터는 딸기들이 자기에게 이야기를 한단다.
어디가 아픈지, 목이 마른지, 햇볕을 쐬고 싶은지, 신선한 바깥공기를 맡고 싶은지 등등.
내 몸이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왜 아픈지 알아야 치료를 하는 것처럼, 딸기의 경우에도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아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야 혹여 영양분을 많이 줬다 싶으면 물을 더 줘 희석시켜야 하고, 공기가 탁하다 싶으면 환기를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 반 공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수분과 환기, 햇볕이 중요한 요소라는 딸기 재배. 그는 아직도 배울 부분이 많다고 한다. 딸기 작목반과 주위 선도농가로부터 얻는 배움 이외에도 올해 그는 마이스터 대학 2년 과정에 입학했다. 앞으로 2년 동안 딸기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결 더 바빠질 그의 얼굴에 딸기 빛 미소가 떠올랐다.

◇ 내 딸기에 맞는 내 땅 만들어야

올해로 두 번째 딸기 수확을 하고 있는 한경자 씨. 이제는 서동딸기 작목반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상품을 출하하는 어엿한 농가 대표다. 비록 경험에 있어서는 아직 초보농사꾼에 가깝지만 검수원으로서 일하며 요구되던 특유의 꼼꼼함과 끊임없는 연구, 매일같이 자식을 돌보는 듯한 노력으로 이제는 작목반 내에서도 높은 가격을 받을 정도가 됐다.
농약이나 영양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양질의 토양을 만들기 위해 미생물을 직접 배양하는 것은 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표적인 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번거로워 쉬이 약품처리를 하기 쉬운 부분을, 그는 우직하게 고집하고 있다.
첫해 마련했던 딸기 하우스에 이어 재투자로 새로 마련한 지금의 하우스는 원래 양계장 자리였다. 질소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딸기 재배에 적합하지 않고 계분 가스 등이 걸림돌이 됐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어느 정도 땅의 성질도 알게 됐고 딸기의 습성도 알게 됐다. 딸기를 위한 작업도 하나하나 손에 익어 갔다.
점점 딸기재배가 몸에 익어 상품으로 내놓고 매출에 눈이 돌아갈 만해도, 그는 홍보나 판매보다는 더욱 맛있고 질 좋은 딸기를 생산하는데 집중했다. 여타의 과일과는 달리 그 모양 하나하나에 상품가치가 달라지는 딸기이기에, 수확해서 박스에 담을 때도 손수 조심스레 하나하나 옮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는 좋은 상품을 생산해 내기만 하면 가격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판매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매와 생산이라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하는 초보 입장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는 분명했다.
이러한 믿음과 노력의 결과는 상품의 가치와 매출로 이어졌다.
4개동 1,200여평의 하우스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그는 지난 한 해 7,000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2kg 단위 박스로 특·상·중·하로 구분돼 출하되는 상품들에 대한 평이 좋아 좋은 가격이 자연스럽게 따라온 셈이다.
같은 품종 같은 작목반의 딸기라도 상품의 질에 따라 박스당 적게는 1,000원 많게는 4,000~5,000원까지 차이가 나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뚝심이 가져다 준 효과는 초보 귀농인들에게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 딸기 초보에서, 작목반 일등 농가로

그는 고향에 돌아왔다.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타지에서 보냈지만, 원래 고향은 금마다.
귀농을 하기 전 국내 굴지의 반도체 기업의 협력업체에서 검수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신입직원 교육을 맡을 정도로 인정받는 인재였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퇴직 후의 안정된 생활을 꿈꿨고,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 본격적인 귀농에 앞서 귀농 관련 인터넷 카페 등에서 정보를 습득했던 그는, 20~30대 등 생각보다 젊은 나이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순간 50대에 들어서는 너무 늦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기왕 귀농하는 거 조금 젊은 나이에 시작해 좀 더 고생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해 실행에 옮겼다.
처음에는 주위의 이들이 열이면 열 모두 반대했다. 농사 경험도 전무하고 가지고 있는 땅도 없었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귀농 2년차로서 시간이 갈수록 안정적으로 농가 운영을 하고 있는 그는, 귀농 초기에 일단 지역사회에 이질감 없이 포함돼야 함을 강조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귀농한 이가 전에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오히려 지역사회에 물들어 그 일원이 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어느 지역이든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텃세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질투 같은 부분이 있어서 귀농 초기에 가장 힘든 부분이 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고 지역에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포함관계를 맺게 되면 농사의 절반 이상이 이뤄진 셈이라고 할 정도.

다행히 그는 금마가 고향인지라 ‘아무개 조카’ 정도로 무난히 지역사회에 입성했다. 그 이후부터는 굳이 딸기 농가가 아니더라도 주위로부터 한도 끝도 없는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다.
처음 귀농을 결심하고 그는 금마지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발품을 팔았다. 부동산에 의지해서는 원하고 바라는 소중한 땅이 쉽게 구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고향은 금마지만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다거나 논밭을 가지고 있는 조건이 아니었기에, 적은 자본으로 귀농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경우 임대를 해야 하는데, 이도 만만치가 않았다. 임대 하우스와 생산원가, 유지비 등을 계산하면 1~2억원은 금방이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중고 딸기 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시가 7~8,000만원은 될 것을 1,000만원 가량에 운 좋게 마련했다.
특별히 딸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작은 면적으로도 재배가 가능하고 가격경쟁력이 있기도 하고 마침 딸기를 재배하던 중고하우스를 마련하게 돼 딸기재배를 시작했다.
그런 그가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 ‘충분한 사전준비’와 ‘욕심을 버릴 것’을 강조했다. 귀농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업으로 삼으려면 자신에게 맞는 것 못지않게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하다는 것. 특히 귀농의 경우에는 ‘열심히’만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는 “처음에는 무리하지 말고 위험요소를 줄여 출발하고, 한 번 호기심을 가지고 미쳐서 해보고 나서 수입과는 별도로 내가 이 일에 감각이 있는지, 맞는 일인지 점검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도 “제2의 인생을 꿈꾸며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사전 준비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농기센터에서는 이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귀농 정착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는 정책교육과 원예, 토양관리, 관수분야 등의 전문 기술교육, 현장실습교육 등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귀농인 지원을 위한 정책자금 대출, 귀농인 생산기반 지원, 주택수리비 지원, 귀농인 실습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초보 귀농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들을 선택해 정착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해 오히려 잠도 잘 자고, 힘을 내기 위해 밥도 잘 먹게 됐다는 그.
고된 농사에 지치지 않기 위해 비수기에 짬을 내 여행을 계획할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
꿀 휴식을 꿈꾸면서도 하절기 멜론 재배를 구상하고, 딸기도 1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당찬 모습의 그.
그런 그에게서 상큼한 딸기 향기가 난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