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방향 결정 이후 이뤄지는 요식행위

정상 작동 여부 검증 시스템 구축 필요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익산시는 거버넌스 행정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은 시민을 정책결정의 파트너로 인정해 함께 치열하게 토론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의견수렴을 거치는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거버넌스의 가치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선행되지 않은 채 법에 정해진 의무규정만을 좇으면서, 시대흐름에 맞는 창의적 행정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책방향이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사후 의견수렴에 그치면서 면피용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아울러 민선6기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했던 책임행정 구현도 허울 좋은 구호에 머물러 있다. 각종 사업과 관련해 감사 등을 통해 불법 및 부당이 확인됐음에도 내 식구 감싸기 식 온정주의가 작동해 경징계에 그치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돼 징계시효가 지난 경우가 다반사다. 퇴직을 해 자유의 몸이 된 경우도 있다.

이에 소통신문은 익산시 행정의 거버넌스와 책임행정 구현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살피고 대안을 제시하는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Ⅰ 말로는 거버넌스, 실제는 단순 의견수렴 뿐

Ⅱ 책임행정 구현, 허울 좋은 메아리

거버넌스의 사전적 의미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자원 제약 하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제반장치’다.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오늘날 전국의 많은 자치단체들이 거버넌스 행정을 표방하고 있다. 익산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주요 대형현안들에 대한 정책결정 과정을 보면 계획의 수립에서부터 시행, 평가에 걸쳐 시민의견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법령에서 정해진 설명회나 공청회 등 사후 의견수렴 수준에 그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형식적 의견수렴 말고는 진짜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 시스템은 전무하다.

시민의 의견을 들어 현안해결 방안을 찾는다는 취지로 꾸려진 민관협의회도 민과 관이 파트너십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척점에 서서 시민의 요구를 행정이 마지못해 수용하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정이 먼저 나서서 문제해결을 위한 창의적 방안을 내놓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고, 주민들이나 전문가가 요구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방어논리만을 앞세우는 모습이 적지 않다.

이 같은 행태는 거버넌스가 아니라 단순히 의견을 청취하는 일회성 이벤트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신청사 건립, 광역상수도 전환, 민간공원 특례사업, 악취·낭산 폐석산·함라 장점마을 등 민관협의회가 꾸려져 있는 환경문제 등 현재 익산시가 맞닥뜨리고 있는 주요 대형현안을 보면 거버넌스가 작동되기 전에 이미 정책방향이 결정돼 있다.

신청사 건립의 경우 2017년 12월 국토부 공모에 선정돼 건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사전 공론화 과정은 전혀 없었다. 공모 선정을 통해 현 위치에 LH를 사업파트너로 해 수익모델 개발이익을 통해 건립한다는 정책방향이 결정된 이후 시민 설문조사와 설명회가 이뤄졌을 뿐이다. 게다가 모현도서관에서 열린 시민설명회에는 절반 가량 공무원들이 동원됐고, 기본계획 수립 용역의 중간보고회는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LH의 셈법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광역상수도 전환도 마찬가지다. 2014년 민선6기 초기 일방통행으로 지역사회에 큰 혼란을 일으켰던 광역상수도 문제는 2016년 취임한 정헌율 시장이 ‘백지상태에서 시작’이라는 입장을 천명하고 시민협의체 구성을 통한 추진을 꾀했다가 무산됐고, 선거를 전후로 잠정적 보류 상태를 지나 민선7기 들어 재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 속에 제대로 된 시민공론화 과정은 없다. 지난해 7월 열린 민선7기 공약사업 검토보고회에서 정헌율 시장은 “광역상수도 전환을 확실하게 추진해야 한다”면서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과거 추진과정에서 겪은 혼란을 우려해 공약사업에서는 공식적으로 제외됐다. 이후 상하수도사업단은 올해 수도정비기본계획(변경)수립용역비 5억3,200만원 편성과 관련해 브리핑을 열었지만, 광역상수도 전환에 대해서는 꽁꽁 숨기려는 행색이 역력했다. 올해 1월에는 익산시가 아니라 익산시의회가 마련한 시민토론회가 열렸지만, 이 역시 전환을 위한 용역비가 세워졌다는 점에서 정책결정이 이뤄지고 난 후 면피성 의견수렴 절차라는 지적이다.

민간공원 특례사업도 개발과 환경이라는 가치의 충돌, 개발이익 배분을 둘러싼 이해당사자간의 갈등 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소중한 녹지공간을 훼손하면서 업자만 배불리는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추진과정에서 공론화 작업은 없는 상태다.

보전가치 높은 녹지공간의 파괴와 조망권 침해, 아파트 위치에 따른 공원 진출입로 및 인근도로 접근성 등 도시공원 한복판에 고층 아파트 건립으로 인한 부작용이 숨어 있지만 익산시는 일방통행 중이다.

익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도시공원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특혜시비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종합적인 도시공원 관리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용역과정에 시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반영하고 일몰제에 대응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익산시·의회·전문가·시민단체·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기구 구성을 주문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를 통한 거버넌스는 작동되지 않고 있다.

악취 등 현안별로 구성돼 있는 민관협의회나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각종 위원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민관협의회의 경우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초기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구성원 만족도나 결론의 정책 반영 여부 등에서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위원회도 시민들의 자유로운 참여나 다양성 담보가 되지 않는다는 구성 자체의 문제점이 있고, 적잖은 회의가 서면으로 진행되면서 형식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좋은정치시민넷 손문선 대표는 “거버넌스의 기본은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고 평가하는 전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며 “행정이 거버넌스 가치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지속적인 교육과 선진 지자체 사례관리 등 매뉴얼을 만들고 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실제에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부서·개인별 인사고과 반영 등을 통해 피드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이상민 사무처장은 “거버넌스는 민간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지, 단순히 의견을 듣는 것은 거버넌스라고 할 수 없다”면서 “대표적인 예로 광역상수도의 경우 당연히 조례상의 공론화위원회에서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데, 행정이 이미 방향을 정해 놓고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