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사회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배분하는 것입니다. 주민주권, 동네자치(마을자치)에 있어 굉장히 소중한 제도인 읍면동이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참여를 이끌어내고 주민이 직접 의사결정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면 지금 시점에서의 도전이 충분히 가치 있는 실험이 될 것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온전한 안착을 위해서는 현재 읍면동별로 구성돼 있는 주민조직의 질적 향상, 그리고 이를 위한 단체장의 의지 및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제기됐다.

지난 9일 익산희망연대(대표 탁제홍) 내 지역문제 토론모임인 희망포럼이 마련한 ‘익산시 주민자치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주민주권 시대, 풀뿌리 주민자치의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곽현근 대전대학교 교수는 “현재의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는 과거 행정편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고, 봉사나 사회적 약자 지원 역할을 하는 자생단체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주민주권 실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직임에도 주민참여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본래적 의미가 퇴색됐고, 그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평가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주민자치 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로드맵,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등을 제시하며 “지난해 8월 정부의 자치분권 종합계획에 중앙의 권한이양이나 재정분권에 앞서 주민주권 구현이 우선적으로 자리해 부각됐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며 “주민주권, 마을자치라는 새로운 규칙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주민들과의 관계 형성이 우선이고, 일부에서 전체로의 참여 확대를 행정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2017년 헌법 개정을 통한 지방분권 추진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중앙엘리트와 지방엘리트(지역 정치인, 교수 등 지식인, 언론, NGO 등)간의 권력 재분배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지방분권 원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힘겨루기에 적용되는 것이고 지방민주주의 원리는 지방정부와 주민간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기에 분리가 필요하고, 지방분권을 위한 노력이 지방의 민주적 실천방식에 전혀 영향을 미지치 않을 수 있다”면서 “특히 주민주권에 관한 부분인 지방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주민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방(로컬)이란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현장”이라며 “국민국가 시대를 지나 자본·노동·정보의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에는 초국가적 조직이나 국가보다 작은 지역과 지방화의 중요성이 부각된다”고 역설했다.

또 “아직도 중앙집권적이거나 대의민주주의만을 민주주의라고 맹신하는 것은 후진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주민주권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포함돼 있는 숙의민주제 도입과 지방자치회 읍면동 시범사업 추진을 제안했다.

숙의민주제의 대표성 문제에 대해서는 산출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행정의 역할과는 별개로 주민의 각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시범사업에 대해서는 행정사무 위수탁 등 무거운 역할보다는 주민자치회가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문제를 찾고 우선순위를 정해 직접 해결해가며 공적활동의 재미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대전 8개동 시범사업의 워킹그룹을 이끌면서 강조한 치열하게 논의하기, 결론 나면 하나로 움직이기, 안 된다고 하지 않기 등의 원칙을 소개했고, 중간지원조직 역할을 하는 동자치지원관을 읍면동에서 단순한 계약직 공무원 취급을 하면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안관수 원광대학교 교수는 주민자치에 대한 교육기회 제공을 위한 익산시민대학 설립 필요성을, 김충영 익산시의회 의원은 주민 동참이 가장 빠른 길임을, 권성남 익산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사무총장은 주민자치 역량 강화를 위한 시스템의 변화를, 이진홍 희망연대 사무국장은 마을공동체 단위 활동 지원과 읍면동 주민자치회 시범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각각 강조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