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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 #21. 길, 사통팔달 옛 오솔길

▲ 산등성이를 지우지 않고 옛길 양 옆으로 조성한 택지는 녹음 속에 깃들고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

<편집자주>

구 노동청 익산지청(금강복지센터) 앞(인북로 32길)에서 바라본 동부시장 오거리 방향

구 노동청 익산시청 앞에서 바라본 익산시청 방향

구 노동청 익산지청(금강복지센터)

이번 여정의 출발지는 금강복지센터(구 노동청 익산지청) 앞길인 '인북로 32길'이다.

'인북로 32길'은 서쪽의 인북로와 동쪽의 선화로를 연결하는 간선도로급 길이다.

이 길은 익산시청과 전북기계공고 앞을 지나며, 남중동에 속한 길이지만 동부시장 오거리에서 시청 쪽으로 200미터 가량 되는 거리는 마동과 남중동을 갈라놓는다.

'인북로 32길'은 옛 길이기도 하다. 70년대에 개발된 택지들이 이 길을 중심으로 조성됐던 이유다. "저기가 해발이 배산하고 거의 같아. 표고차가 나지 않는다니까" 동쪽으로 걷던 김영규 회장이 동부시장 오거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무슨 말인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서남쪽 단독주택가와 '연화로'를 연결하는 '인북로 32길' 곁골목

동부시장 오거리 동쪽의 염광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교회는 고봉산 정상부에 있다. 선화로 같은 큰길을 지우고 보면, 우리가 걷는 옛길(인북로 32길)은 염광교회 옆으로 난 길과 연결되어 계속 동진했을 것이다.

옛길은 고봉산 능선을 타고 구불구불 동서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고봉산 정상부인 동부시장 오거리에서 서쪽 방향을 바라보면 계속 아래로 흘러내린 옛길은 익산시청 앞에서부터 평지를 가르다가 다시 남바위 산을 넘어 평야부에 이른다.

달리 말하면 옛길 주변의 주택들과 기계공고·익산시청 등은 고봉산 능선 주변과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길이 완만하게 흘러내리고 있어서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인북로 32길' 양쪽의 단독주택지가 경사지에 조성되어 있는 이유다.

'고봉산과 배산은 같은 높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김 회장이 남쪽 단독주택지를 관통하는 골목 하나를 선택해 들어간다.

완만하게, 혹은 급격하게 흘러내리는 길

'연화로'에서 바라본 '선화로' 너머 마동쪽 아파트들

'연화로'에서 바라본 동남쪽의 '인북로 32길' 곁골목

아래로 급하게 흘러내리는 반듯한 길을 걸으며 김 회장이 "이런 길은 여기 몇 개가 있어. 그래도 아직 옛날 길이 있을거야. 거길 한번 찾아보자고"한다.

잊힌, 혹은 발전이 가린 길을 찾는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모양이나 크기가 대동소이한 주택들, 하지만 주인의 얼굴처럼 담장 밖으로 드러내는 정원수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제각각 다른 감나무를 비롯해 꽃이 말라비틀어졌지만 이파리가 무성한 무화과, 능소화, 꽃이 만개한 석류나무들이 골목 가득 싱그러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다.

한 평이나 될까 하는 텃밭도 눈길을 끈다. 130보 가량을 취한 듯 내려갔다.

'연화로'가 우리를 맞았다. 우리가 내려온 길은 '인북로 32길'의 곁 골목이다. 서쪽(오르막)으로 30보 가량 되는 곳에도 같은 이름의 길이 있다.

김 회장은 우리를 동쪽(내리막)으로 이끌었다. 연화로를 30여보 더 내려가자 같은 이름의 길이 또 나온다.

"여기 어디쯤인데" 하던 김 회장이 문득 떠오르는지 저만치 왼쪽의 공사장 펜스를 가리킨다. "저기에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 그 자리에 고꼬로라는 일본 스타일 주점이 있었어. 그 음식점 마당에 100년 이상 묵은 정자나무가 있었잖아. 이 길을 지나가다 보면 확 눈에 띄었지"

아파트 건설현장

인북로 32길에 닿았던 옛길(무명)

김 회장의 말을 들으며 걷던 우리는 아파트 공사장의 서쪽 끝에 도착했다. 마동 코아루 디펠지체 아파트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김 회장이 공사장 펜스와 주택가 사이에 난 길을 가리키며 "여긴 것 같아. 옛날 길"한다. 우리가 오르막을 이루는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김 회장이 하던 말을 계속 잇는다.

"건설회사에서 그 큰 나무를 베어버리기가 너무 아까우니까 익산시에 기증을 했지. 익산시가 이 나무를 서동공원에 옮겨 심었어. 2억인가 3억인가를 들였지. 큰 나무라는게 제 가격보다 옮겨 심는 비용이 더 들지. 그런데 말이야. 그 나무가 죽었다는 거야. 죽여먹었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