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종합 > 특집기사 > 담화 #2. “나는 나의 마음을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그리는 나의 색채와 선들은 살아 움직이며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담화 #2. “나는 나의 마음을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그리는 나의 색채와 선들은 살아 움직이며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평면에 옮기는 사람.

오감을 통해 수용한 것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사람.

사물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

도시의 지금을 기록하는 사람.

화가의 빛은 실체를 관통한다.

화가의 어둠은 실존을 고민한다.

지역의 화가는 향토사학자다.

소통신문은 각기 다른 화가들을 만나

저마다의 육성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림에 임하는 화가의 태도 혹은 삶에 임하는 화가의 태도에 따라

다른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일상에 떠밀려가는 우리가 일상을 숨죽이고 관찰하는 화가들을 통해

유의미한 가치들을 건져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화가가 포착한 이 도시의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우리가 무수히 지나쳐버리는 것들일 것이기에

소통신문은 지역의 화가들을 관찰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중희의 그림과 상면

이중희의 그림을 멀리서 본다. 강렬한 원색이 뒤범벅 되어 있다. 그 안에 형상이 있으나 선은 색에 의해 뭉개졌다. 드러나 보이는 형상의 일부로 여겨지는 부분에는 흰색이 채워져 있다. 아니, 사실은 형상이라고 인지되는 그것이 형상이 아닐 수도 있다. 색은 종이 위에 뿌려졌는지 찍혀졌는지 그어졌는지 낱낱이 구분하기는 어렵다. 붓으로 그었다고 보여지는 획선들은 저마다 리듬을 타고 있다.

원색의 화면이 낯설지는 않다. 신당에서 보았고, 불당에서도 봤다. 무당이 굿하고 제사를 지내는 무신도 속 신장의 복색이 저러하다. 절 문에서 마귀들을 물리치는 사대천왕도 단청 대문 처마 아래 같은 색깔의 옷깃을 휘날리고 있다. 막 상면했을 때는 섬뜩했다가도 금세 심장이 더워지는 까닭은 그들이 수호신들이어서일까.

원색은 우리 일상으로부터 상당히 격리되어 있다. 원색의 옷은 대개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원색을 소화할 수 있는 특별한 분위기나 매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선뜻 입기 어렵다. 원색이 촌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건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원색이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사물의 본질이 빛에 드러나는 상태다. 본질은 색으로 드러나며 원형을 보여주지만, 색 그 내부의 본질은 무형이다. 종이 위에 원색을 사용하는 시선은 유형실체세계가 아니라 무형실체세계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중희의 그림은 선으로 형상을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니라 색으로 형상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의 오감은 ‘자극역치’라는 통제력에 의해 제한된다. 일상의 상태에서는 무형실체세계를 볼 수가 없다. 몰아의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뜨지 못한다.

흰색은 여백이다. 형상이 여백으로 치환되었다면 거기에서는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白)은 형상이 무화(無化)된 잔흔이다. 혹은, 형상의 다른 상태다. 거기에서는 본질을 담고 있던 형상의 본질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형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형상이 곧 본질이고, 본질이 곧 형상인 상태가 된 것이다. 여러 색들이 어떤 행위에 의해서 여러 형태를 이루며 그 형태는 에너지의 파동을 매개한다. 기운생동하는 그것은 본질의 에너지다.

이중희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본다. 뜨겁고 격렬한 파동에 압도된다. 그 찰나에 화염이 이글거리는 화면 저 안쪽(반대쪽)을 생각한다. 저 쪽 깊고 차가운 심연으로 들어가면 ‘나’를 식힐 수 있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화염을 통과해야 하리라.

압도됨에 느낌을 맡긴다. 탄력적이고 격정적이며 자유로운 붓질에 옮겨진 점과 선과 색들 그 낱낱의 독자적인 분출과 충돌, 그 혼돈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이루는 그림과 교감한다. 방해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작가가 지녔을 일정한 호흡의 신명 때문일까.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듯한 율동의 이미지, 원색의 소용돌이를 느낀 순간이었다. 문득 눈앞에서 그림은 사라지고 춤이 보인다. 이중희의 붓춤이다. 단지 붓만 허공에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그의 몸 구석구석이 꿈틀거린다. 그의 몸은 음조를 알 수 없는 음악에 감응하듯 단속적으로 허공에 선을 그려낸다.

뿌리고, 찍고, 긋는 그의 춤은 무당의 춤이다. 접신(接神) 춤이다. 화면 속의 색흔들은 다름 아닌 그가 매개한 신의 현신이다. 이중희는 자신을 초혼의 도구로 삼기 위해 현생의 미학에 관한 지식과 중력의 지배 아래서 구축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났다. 그의 감각이나 기능들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그렇게 이중희 스스로 초혼(招魂)의 도구가 된 까닭에 눈앞의 그림은 이중희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성취이거니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이룬 것이 무엇인가를 이중희 자신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역설을 지닌다.

이중희 그림은 그래서 독보적이다. 의식으로는 볼 수 없는 무의식의 소산이며, 보는 이의 육감(六感)을 여는 열쇠가 되는 이유다.

이중희의 그림에 대한 평론들

“처음으로 이중희 씨의 그림을 들이댔을 때 내 등줄기에 뜨거운 전율이 흘렀다. 테마가 절실한 것도 아니고, 교묘한 구축력에 압도된 것도 아니고, 하물며 어디 한 가지 나물랄 데가 없도록 완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인가 하나 꼬집어 논평하는 것을 무언 속에서 거부하는 것 같은 존재감이 내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이었다” 시인이자 소설가·미술평론가 마스나가 고이찌의 감상이다.

그는 또 “이중희 그림은 그 속의 감춰진 세계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한다라는 말을 오랜만에 확인해 주었다. 이중희 씨는 민족이 획득해 온 역사유산을 지적 조작으로서가 아니라, 융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집합 무의식으로서 화면에 쬐어 나타나게 한 것이다”고 표현했다.

그는 특히, “일종의 유럽숭배자들에게는 이 씨가 그려낸 프리미티브(독자적인)한 생명난무의 드라마는 너무도 강렬하고 눈부셔서 아마 오래 보고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며, “그러나 한 번 응시하고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한 번 천천히 눈을 열어보라. 그러면 태고의 땅울음 소리를 듣게 될 것이요 거기에서 살아서 노래하며 기도하는 사람의 춤추는 환상을 보게 될 것이다”고 극찬했다.

미술평론가 와시오 도시히코는 “무(巫), 무(舞), 만다라, 이것이 이중희 그림의 라이트모티브(주제적 동기)다. 무(巫)는 또 나아가 무녀(巫女), 무신도(巫神圖)가 되어서, 결국은 무(舞)와 연결되어 무무(巫舞)가 된다”고 이중희 그림의 흐름과 귀결을 가리킨다.

그것을 토대로 “서로가 교향(交響)하는 혼(魂)의 동(動)과 정(靜) 그리고 색채의 격동적인 다이나미즘, 굳이 일본축제에 비유한다고 하면, 필경 이오모리의 네부따라고 할 수 있을까. 억압 당하면서도 땅에 뿌리박은 민중혼의 해방감이라는 인상을 깊게 한다”고 느낌을 옮겼다.

미술평론가이며 가와사끼시 모까모또따로 미술관 관장 무라타 께이노스께는 “우리가 이중희의 그림에서 보는 것은 심리적, 물리적인 상황에 따라 변환하는 모양, 즉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로서의 일루전(표현상의 기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이중희가 ‘신’이라고 부르는 인간 창조력의 주체로서 ‘절대적 실존’의 상을 설정하는 것이다”고 동의한다.

그는 또, “이것은 융이 감득한 만다라의 모습 즉, 누구의 마음 속에도 내재되어 있는 무의식적 원형의 이미지에 통하는 것 같다. 이중희의 제작이 유채보다 아크릴과슈의 원색 위주라는 것도 납득이 간다. 수용성의 아크릴과슈는 무광이고 발색이 밝고 특히 금방 말라버리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구도나 붓 쓰임에 주저 없는 결단이 요구된다”며 작업과정을 엿본 뒤 “여기에서부터 이중희의 캔버스 상에 전개되는 충일한 공간이나 응집된 감동, 그리고 화면 속으로 유인하는 흡입력을 가진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의 말들이 차례차례 쏟아져 나온다”고 찬미했다.

미술평론가이며 서독 갓셀 예술대학초빙교수 석도륜은 “회화란 오로지 작가의 허구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행위로서 이를테면 꿈과 환영을 현체가 있는 것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꾸밈이 없고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존재감에 가득찬 이중희의 작품은 그런 뜻에서 그가 사는 나라의 역사와 풍토를 짙게 풍기고 있다 하겠다”고 평가한다.

그는 또 “강철로 만든 칼을 휘두른 듯한 붓놀림과 채색을 눈여겨보자. 사소함에 치우치려는 것을 억제하는 작품에서는 섬약으로 달려가는 것을 두려워하듯 원초적인 골격을 지니고 직접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하다. 심신해탈이라는 말이 있으나 예교적 근엄함과 약간 청교도적인 이중희 자신이 그와 같은 자기 성격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고 이중희의 의도를 읽어냈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색채는 아무런 인식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즉 시각에서 지각으로 그리고 인식으로의 지각과정을 생략한 채 감정에 곧바로 뛰어든다. 그러기에 색채는 인간의 정감에 호소하는 매개물로서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원색의 감정에 대한 호소력은 거의 직선성을 갖는다”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이중희의 표현기법은 논리적이거나, 주지주의적이거나, 또는 묘사중심에 반한다. 감성제일주의라고나 할까. 덜 다듬어진 듯 한, 그러나 폭발적인 힘에 의해 분출하는 감성을 자극적인 색깔로 받아들인다. 이 때의 감성은 색채를 혼합할 겨를이 없다. 직설적인 감정 표현, 그것은 원색만이 보조할 수 있다”고 했다.

일단 예술행위에 들어가게 되면 특별한 감정, 즉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극도의 긴장상태가 계속되는데, 그 긴장상태는 고조된 감정의 연속적인 자극에 의해 지탱됨으로써 보통 감정이 체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끄집어내는 단서가 된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그의 그림의 내적 의미로 파악되는 행위성은 작가의식에 의해 통제되면서도 그 자체는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술사가이며 평론가·예술문화종합지 world&I 아트디렉터는 다음과 같은 미국 미술계에 보낸 이중희의 편지를 차용하는 것으로 평론을 갈무리한다. “나는 작품을 할 때의 고양된 정신상태에 몰입하게 되면 작품을 하는 행위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행동을 스스로 인지할 수 없게 된다. 예술작품 그것은 인간처럼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영혼이 이입된 생명의 존재이다. 본질은 어디까지나 보이는 그 뒤에 간직되어야 하고 그것에 포함된 것은 영원한 생명의 가치와 영혼이어야 하며 그것은 불가사의한 존재와의 연결을 통하여 끊임없이 사랑와 감동의 힘을 공급해주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화가 이중희와의 상면

한 여름 숲 안쪽에 있는 작업실 문은 열려 있다. 외기와 내부의 공기가 서로 섞여있지만 볕이 없는 내부는 질척한 습기에 짓눌려 있다. 이중희는 어떤 방송사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하는 중이다. 며칠 전 전시회 전날 전시를 취소한 사실이 통화의 주제였다.

자치단체가 초대했던 전시인데, 기모노 입은 여자 그림이 섞여있다는 이유로 자치단체가 무기한 전시 연기를 통지했다. 세계는 그를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규정하는데, 자치단체는 그를 왜색 작가로 낙인찍었다. 황당한 그의 목소리는 바짝 말라서 카랑카랑했다.

불쾌한 습기를 다 말려버릴 것 같은 그의 통화는 20여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하지만 그는 들썩이지 않았다. 오히려 민소매 밖으로 드러난 그의 팔뚝 근육과 건장한 체구는 고요한 가운데서 산을 옮길 기운을 누르고 있는 듯하다. 그의 나이 73세.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그가 말을 할 때는 청량감이 넘친다. 목소리톤 뿐만 아니라, 기운이 맑아서일 것이다. 오염되지 않고 자기의 원형을 지켜온 사내는 거침이 없다. 그것은 상대로 하여금 열게 하는 힘이다. 내 심장이 그의 심장과 함께 뛰고, 온전히 그의 시선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가 말한다. “저는 일찍이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간 절의 법당이나 무당집의 신당에서 기묘하고 강한 색채가 일으키는 무섭고도 아름다운 ‘전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인 것, 영적 감동의 요소, 세계 어느 그림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자적이고 특수한 우리만의 색의 대비요 조합인 것을 느꼈습니다”

전율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의 그림의 형상이 뭉개지고 형상일만할 부분에 흰색이 채워져 있는 점을 궁금해 하자 그는, 흰색을 여백이 아닌 강조하고자하는 포인트로 설정하는 동양화의 특징을 언급하더니 “‘없음’이 아닌 ‘있음’, 빈곳이 아닌 꽉 채움, 변두리가 아닌 포인트 부분을 흰색으로 설정하는데 대개 불교의 탱화나 단청, 무신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작품이 원초적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작가의 의지나 의도만으로는 되지 않고 그 자신 몰입의 경지에 의식을 초월한 영혼의 이입과정, 투사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적자아’에 충실한 개인이나 화가는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적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영원할 수 있는 가치요 생명체가 아닐까요”하고 반문한다.

‘만다라’를 그림의 주 주제로 삼고 있는 데 대해서는 “만다라는 불교적 용어로 표현된 ‘우주의 근본진리’이고,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의 최고봉 역시 ‘진리’이며, 예술의 최고의 목표 또한 진·선·미의 합일의 최고의 경지다”라며 “가장 감동적인 것은 사람 마음을 움직여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는 “무당이 신명에 취해 무보(巫譜)도 없이 춤추는 것 같이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는 분출되는 표현 욕구와 감흥, 억제할 수 없는 신명이 없이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 그렇듯 여과 없이 그대로 옮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이라기보다 그 상태로 진입하기 위해 흥을 돋운다고 할까요”라고 귀띔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지향하는 것을 “나를 구원하고 완성시키는 것, 나를 신에게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중희는 또 하나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으로의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의 미술관이 나를 선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한다. 남은 여생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고향에 뼈를 묻을 생각인 그는 작업실이 있는 이곳 미륵산 자락 1만 여평의 터에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꿈도 키우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익산시가 문화예술을 수용하는 역량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따라붙는 것일 터다.

글 공인배 · 사진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