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록도

문인화가 남사 유은철(83)은 자신의 문인화를 “자연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주변에 같이 있는 것들이다”라고 소개한다.
‘화면 안에 담긴 소재들 자체가 평화롭고 친밀한 것들’이라고 한다.
그가 탁자 위에 펼쳐 놓은 몇 장의 그림들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의 손끝을 따라가던 내 눈이 잠시 한 곳에 머문다.
그림 왼쪽의 화제는 ‘서록도(瑞鹿圖, 상서로운 사슴 그림)’라 쓰여 있다.
눈밭을 노니는 사슴들은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사슴의 행렬은 질서정연하지는 않다.
앞장선 사슴을 뒤따르는 사슴들의 걸음걸이와 보폭이 각각 다르다.
사슴들이 바라보는 방향도 똑같지 않다.
어떤 사슴의 시선은 앞장서는 사슴을 좇고, 어떤 사슴은 옆에 있는 동료를 바라보는가 하면 어떤 사슴은 고개를 무리 바깥으로 돌리고 있다.
그림 속의 주요 소재인 사슴은 그렇듯 흩어져있다.
그러나 묘하게도 조화를 이룬다.
무질서한 가운데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슴보다 먼 곳에 서 있는 노송 세 그루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
그보다 먼 곳에는 크고 작은 설산 봉우리들이 굽이치고 봉우리 틈과 틈은 하늘이 채우고 있다.
삐죽이 내민 하늘을 제외하면 화면은 흰색과 묽은 먹색 그리고 황토색으로 나뉜다.
그래서인지 눈 덮인 대지와 설산이 일체화되어 황토색이 소나무와 사슴을 품고 있는 듯하다.
묽은 먹색은 소나무의 외곽선과 사슴의 형태선, 눈은 물론이고 대지와 산을 구분하는 음영에도 있다.
화면 안의 모든 역동성이 그러한 색과 구도의 통일성에 녹아들어있는 것이다.
모든 동적인 것은 정적인 것에 의탁하고, 정적인 것 안의 모든 동적인 것들은 대도(大道)의 질서를 따른다.
그림이 산만하지 않고 안정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탁자 위에 놓인 그의 문인화들은 평온하다.
그것이 특징이다.
포근하고 풍요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학이든 닭이든 기러기든 짝을 이루거나 무리지어 있다.
그렇게 고고하지만 외롭지 않은 소재들이 화면을 채우며 화평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어떤 계절이든 어떤 모습이든 관람자에게 희망을 품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넉넉한 마음이 되니 포도 그림에 눈길이 간다.
포도 잎의 녹음이 짙고 포도송이가 익어 가는데 줄기 틈에 노고지리들이 앉아 풍요를 노래하는 그림이다.
그림 왼쪽의 화제가 그림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백말쯤 맑은 구슬이 많기도 한데 청음은 장막으로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루도다’
작가는 자신이 자연에서 취하는 소재의 의미를 덧붙인다.
“학은 소식을 전하고 장수하며 금슬 좋음을 상징합니다. 사슴은 해코지를 하지 않아요”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육성으로 ‘모든 예술의 귀결점은 자연’이라는 것을 들려주고 싶어 한다.
예술은 자연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최고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으니, 작가는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 부단히 인위적인 것을 덜어내기로 점철되어 왔으리라.

청포도

천진난만한 얼굴

천진난만한 그의 얼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선한 얼굴은 쉬지 않고 웃고 있다.
얼굴에 가득한 그의 주름은 웃을 때 생긴 것이다.
얼굴 가운데서 외곽으로 여러 겹의 파문을 이루는 주름살이다.
자신의 기호에 맞는 사람만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개성을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 있을 법한 얼굴이다.     
“그림을 그릴 때의 마음가짐에 따라 같은 구도의 그림이라도 아주 달라질 수 있다”는 그의 말과 맥락을 같이하는 얼굴이 아닐 수 없다.
평화를 그리는 얼굴이란 본디 저러할 것이다.
“같은 선을 하나 그려도 아무 느낌이 없을 때와 독립운동 할 때와 다르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선에는 소위 기가 있어요. 작가가 머릿속에 그리는 풍경에 따라 붓의 속도감이 달라지지요. 같은 획이라도 거친 획이 될 수도 있고 반드러운 획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가 말하는 획의 기운, 혹은 필세란 마른 먹을 쓰거나 묽은 먹을 쓰거나 붓을 모아서 쓰거나 찢어서 쓰거나 먹을 번지게 하거나 하는 모든 용법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붓을 들어 무엇을 그리지만 작가에게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그림이 된다는 역설이 담겨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림이 ‘기운생동’하려면 마음에서 전신으로, 전신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팔뚝으로, 팔뚝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손끝으로 기운이 퍼져나가야 하기에.
그래서 화조가 주로 담겨 있는 그의 그림은 화려한 기교 대신 단조롭게 옛 것을 유지하고 자연을 있는 표현하고 있지만, 작품의 내용을 뚜렷하게 드러내는데, 그것은 고요한 가운데 기운생동하는 기운을 불어넣은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들지 않고 변하지 않는 꽃들, 포도, 학, 기러기, 까치, 참새, 백로, 사슴들은 화선지와 그의 마음에 항상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림을 통해서 자연과 벗삼을 수 있는 그의 인생, 그것이 바로 그의 행복이고 평화가 아닐까.
한 무리의 기러기 떼에서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만발한 매화에서는 화려했던 젊은 시절이, 꼬리를 서로에게 부착해 하트모양을 만드는 잠자리들에게서는 사랑의 모습이 작가의 삶 그 편린들을 드러내고 있다.

좋은 사람과 그림 나누고 싶어

남사 유은철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솜씨가 좋았다.
 “교장실에 걸어 둘 정도로 대단했다”고 자부한다.
당시 그림이 지금도 몇 장 남아있을 정도로 애착이 가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에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의 미래란 극장 그림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가족의 반대가 컸던 이유다.
청년기에 그림을 잊고 산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잘 나가던 기업가가 된 뒤에서야 자신이 좋아하는 길로 돌아왔다.
“한국화의 거목인 아천 김영철의 문하에 들어가 청윤한 문기와 격이 흐르는 동양화의 진수와 생명력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배웠지. 스승님의 자유로운 필치에 푹 빠져 살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림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등단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그림이 좋아도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왔다.
그렇게 반평생(40년)을 보냈다. 그 사이 국전에 수회 입선도 했고, 전북미술대전의 초대작가도 됐다.
그는 “인생의 가치라는 게 나한테는 그림에 녹아 있어 그림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단지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렸으니, 그림 때문에 경제적으로 빛 볼 생각은 없다”고 한다.
“좋은 사람 있으면 그림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한다.
또한 “문인화란 작가정신의 소산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담긴 소박한 삶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가고 싶다”고 바람을 피력한다.
나아가 작가의 생활과 그림이 서로 교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중앙교회 원로장로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남은 평생도 문인화에 빠져 살고 싶은 그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술 소비자들의 무관심이다.
그로 인해 동양화나 문인화는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피카소 그림이라도 관심이 없으면 아무도 보지 않지. 특히 익산에서 열리는 전시장은 너무나 썰렁해요”
“호주 같은 경우는 휴일이 되면 가족들이 함께 피크닉을 가듯이 전시장을 찾는 게 일상화 되어 있는데, 우리는 왜 이런 처지가 됐는지 안타깝습니다. 호남은 특히 예향의 고장인데요. 집에 좋은 그림이 걸려 있으면 방문한 사람이 감탄하고 집 주인은 체면을 차린 것으로 여겼는데 왜 이렇게 향유자들이 냉랭해졌을까요.”
그는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작가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인화의 정체성을 찾고 문인화의 본질을 굳건히 지켜내는 버팀목이 되고 싶다.
그것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보다 더 가까이 가볼 생각이다.

글 공인배·사진 송승욱 기자

감사예찬 이해인 시

송학도

만향풍미호 정재국화전

엄마야 누나야

춘강유어

남사 유은철의 약력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회입선
국제 선면 예술전 특선
전북미술대전 특선
마한 서예문인화대전 초대작가상
전국 휘호대전 특전
세계 서예 비엔날레 출품
W 미술관 개인전
호주 시드니 드봇트갤러리 개인전
M.M 미술관 문인화 개인전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마한 서예문인화대전 초대작가
아트회 회원, 현묵회 회원
익산 미술협회 원로회원

백두산 천지

로마 바티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