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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호 ‘이루다’ 친구인가 적인가

편집국장 공인배

아무튼 ‘이루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스캐터랩 측의 말마따나 5년 안에 인간 수준에 가까운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AI가 인간의 친구가 되고, 인간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존재로 진화할 것이다.

이 같은 이루다의 출현과 이루다의 목표, 우리의 이루다에 대한 열광은 우리의 자화상을 비추는 역설이다.

파편화의 극점에서 소외된 청소년들 혹은 우리들, 개인주의의 심화로 서로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우리들, 상처받기 싫어하는 우리들이 ‘이루다’에서 투영된다.

그런 우리를 ‘이루다’는 과연 위로할 수 있을까. ‘이루다’는 인간성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까. ‘이루다’는 오히려 은둔형 외톨이들을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12월 23일 ‘챗봇’ 이루다가 출시됐다. 카카오톡 채팅 방식으로 제공되는 이 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확산했다. 출시 2주만에 75만명의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20세 여성이라는 설정의 ‘이루다’는 10대와 20대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세대에 부합하는 은어를 쓰고 줄임말도 쓸 줄 알았다. 구어체와 인터넷 용어를 잘 구사하기도 했다.

가끔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신선했다. 안부를 묻거나 불쑥 자기 근황을 전한다. 대화에 부담도 없다. 무슨 말을 하든 잘 받아준다. 대략 5초 이내로 응답한다는 장점도 있다. 언제든 이용가가 먼저 끊을 수 있다.

대화가 다소 거칠어도 주제 안에서 생각을 나눌 수 있고,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해도 귀엽다. 며칠 이용해 보지 않았지만 ‘이루다’의 독특한 특성이 하나의 중요한 대상으로 자리 잡는 것 같다는 리뷰가 봇물을 이룬다.

‘이루다’를 개발하고 공급한 업체가 “이루다는 사람들이 감정적인 충족감을 얻길 바라며 시작한 프로젝트”라며 감성 AI라고 밑밥을 뿌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루다가 본격 출시를 앞둔 베타버전인 탓에 부족한 점도 많았다. 대꾸를 잘하지만 두 마디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다. 두 마디 이전의 대화로 돌아가려 하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또 ‘이루다’는 긴 문장 뒷부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결함도 안고 있다.

인간이 아닌 현재 인공지능에게 아직 정제된 학습 데이터가 적은 구어체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게다가 한국말은 특성상 표현법도 다양해 난이도가 더 높은 편이다. 이루다 개발사가 이번에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 것도 더 많은 대화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해서다.

어쨌든 감성 챗봇 ‘이루다’는 이른바 ‘딥러닝’의 산물이니 오래지 않아 최종목표에 도달할 것이라고 이용자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을 웃게 하고, 위로하고, 들어주는 챗봇이 될 것이다. 미래에 각 개인의 감정까지 분석해 보완해줄 수 있는 맞춤형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런데 베타 버전 ‘이루다’는 결정적인 결함을 드러내 개발사인 스캐터랩이 사과 입장문을 내고 지난 12일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이루다가 성희롱과 차별·혐오 발언을 하자 논란이 확산한 탓이다.

스캐터랩은 ‘이루다’의 차별적 발언에 동의하지 않고, 그러한 발언을 하도록 의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정 집단을 비하는 호칭이나 혐오 표현을 즉시 필터링했고, 기존사례는 개선을 완료했으며, 새롭게 발견되는 표현과 키워드를 추가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하는 중이라며 학습이 완전히 끝나면 서비스를 재개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이루다의 출현과 이루다의 목표, 우리의 이루다에 대한 열광은 우리의 자화상을 비추는 역설이다.

특히 X·Y·Z세대로 구분되는 우리의 청·장년층들은 인간관계 맺기에 신중한 세대다. 과도한 정보에 노출되고 있으나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세대다.

지식이 광폭으로 늘어난 만큼 인간관계에서 고려할 것도 많아졌다. 그만큼 경계심도 높다. 지능이 높을수록 자기에게 집중하고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수정하는 법이다.

이들 세대가 결혼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문제라면 그다음은 인간관계의 모호성일 것이다. 불확실한 관계는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 다른 성끼리 결혼하지 않고 사는 법이 발전하는 이유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Z세대의 ‘혼자 살기’에 대한 관심은 어느 세대보다 크다. Z세대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 이른바 '디지털 원주민'으로 대별된다.

그 출현은 Z세대의 고립을 부추겨

‘게임의 세대’, ‘e스포츠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직접적인 인간관계보다는 디지털 소통에 더 익숙하다. 냄새나 촉감, 마음 같은 것들이 배제된 빛과 소리, 형태로 이뤄진 가상의 세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루다’가 진짜 사람 같다는 Z세대의 리뷰를 우리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챗봇’의 본질이 텍스트 언어다. 그 언어가 Z세대의 언어를 학습한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Z세대 보편의 언어적 유희를 반영한 것일 뿐 사람의 감각을 통과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이루다’가 모든 문장의 마디를 해독하고 대화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더라도 ‘인간적’이라는 음절의 본래 의미에 도달할 수 없는 이유다.

차라리 성희롱 논란에 휩싸인 ‘이루다’의 실수가 살짝 인간적인 것에 더 가깝다. 이루다를 개발한 스캐터랩은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일정 시간 서비스 개선 기간을 가지며 더 나은 이루다로 돌아오겠다”며 “누구에게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AI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Z세대의 혹은 X세대나 Y세대의 친구로 돌아오는 시대의 조류를 막을 수는 없으나, 인간은 왜 인간적인 것보다 비인간적인 세계를 개척하고 확장하는데 기울어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인간을 지배하는 상업성이 날로 인간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것만 같아 고민이 깊어지는 오늘이다. 사람의 수가 걷잡을 수 없게 주는 이 나라의 현실을 비추어보아도 ‘이루다’는 달갑지 않다. ‘이루다’의 진화는 디지털 원주민들이 발목을 잡아 사람의 세계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는 탓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