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와 본격적인 인연은 2005년부터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순간에는 ‘사람’이 있어 지금도 감사하다.
그땐 난 익산 관광지 현장에서 많은 관광객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주 중·주말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그리고 수시로 관광객을 만날 수 있었던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관광’이라는 재밌는 숙제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이 단순 재밌지는 않다. 이젠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것은 관광을 통해 ‘사람’을 얻고 ‘사람’을 통해 지금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난 자주 이런 질문을 해온 듯하다.  ‘익산’ 하면 떠오르는 사람 누군가요? 
내가 만난 사람(관광객 일부)은 익산이 고향이라며 엄마나 가족 친지 또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익산이 고향이 아닌 다른 사람이 더 많았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익산요? 어!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요?’라고 대답한다. 순간 서운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오늘 이 사람들과 익산의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날이 되겠구나 하는 기쁜 마음으로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하나하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곤 하였다.

 난 익산시 웅포면 그 일대를 중심으로 금강 줄기와 입점리 고분군과 그 유물 등을 통해 초기 백제이야기로 시작하여 금마면의 서동왕자의 마를 캐면서 지내던 이야기, 가끔은 삼국사기와 같은 문헌을 인용하면서 서동의 용모가 수려했었으며 지략도 뛰어났다고 설명해 주면 사람들은 서동왕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듯했다. 내가 강조하는 부문 중 또 하나가 바로 ‘서동요’다. 나와 비슷하게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국어시간에 배웠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4구체 향가 ‘서동요’를 금방 떠올린다. 나의 이상형을 그리듯 난 사람들에게 1400여 년 전 한류스타가 바로 서동왕자가 아니었을까 한다면서 이야기를 엮어 듣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옛 문헌(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왕자는 어릴 적 홀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마를 캐면서 지냈다 한다. 서동왕자가 어머니와 같이 물을 길었던 우물터가 남아 있으며, 마를 캐던 동산엔 아직도 토성(익산토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서동왕자는 마를 캐면서도 노래를 지어내 백제 땅을 넘어 신라 땅까지 노래를 유행시켰으니 이게 바로 국경을 초월한 k -pop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작은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서동요’를 같이 읊조리기도 하고 노래처럼 음을 넣어 같이 불러도 본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신라 진평왕의 딸로 가장 아름다웠다는 공주님, 바로 선화공주님이시다. 2009년 미륵사지석탑에서 사리봉안기가 나오면서 선화공주의 존재와 실체가 더 궁금해지기도 하였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왕자가 백제 제30대 왕(무왕)이 되어 선화비(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미륵산)에 지명법사님을 찾아가던 중 용화산(미륵산) 아래 연못에서 미륵삼존을 만나게 되어 이곳에 미륵사라는 대규모 국가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전해내려온다.

그리고 무왕은 익산시 왕궁면에 왕궁을 지었다 한다. 지금 그 왕궁터에는 그곳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왕궁리 유적전시관, 왕궁리 오층석탑과 주변 건물지 그리고 백제 왕궁 정원 터가 잘 남아 있다. 지금은 왕궁터의 정전을 비롯한 건물지, 그리고 정원지를 둘러볼 수 있도록 산책로가 있어 혼자 걷기도 좋고 가족과 걷기도 정말 좋은 곳이다.

 왕궁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차로 10여 분을 가면 무왕과 선화비의 릉을 만날 수 있다. 이 두 릉은 양옆에 나란히 있지 않고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도로가에 있는 릉이 무왕릉이고 안쪽 오솔길을 따라 2-3분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선화비릉을 만나볼 수 있다. 우린 이 두기의 릉을 쌍릉이라고 부른다. 난 쌍릉에서 손에 손을 잡는 이벤트를 무척 즐겼었다. 그때만 해도 버스(43인승)로 익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통 20명 이상에서 40명 정도가 같이 쌍릉을 돌아보곤 했다. 가족도 있었고 그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우린 손에 손을 잡아 인간띠를 만들어 무왕릉과 선화비릉을 뱅글뱅글 돌았다. 20명 정도면 팔을 쭉 뻗어서 인간띠를 만들고 40여 명이면 좀 더 가깝게 모여 인간띠를 만들었기에 언제나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던 듯하다.

 내가 이렇게 옛 향수에 젖어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1400여 년전 우리 땅에 소중한 사람인 서동왕자(무왕)와 선화공주가 있었기에 우린 지금도 우리 이웃과 또는 멀리서 방문해 주는 사람들과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손도 잡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관광의 요소이다.

 아주 잠시 딴 시대 딴 나라 이야기를 해보고자한다. 16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인물 이야기다. 여러분은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6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이다. 서로 원수인 가문에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하게 되고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가문을 화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셰익스피어 당대에서부터 햄릿과 함께 가장 많이 공연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공연되고 있으며 두 주인공은 젊은 연인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베로나로 신혼여행을 가던 커플이 참 많았었다. 신혼부부들은 베로나를 방문하여 로미오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던 발코니에서 사진 찍고 줄리엣 청동상 만지며 사랑의 소원을 빌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관광의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처럼 실제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세익스피어의 머릿속에서 창조된 허구의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이를 활용하는 게 관건이다. 다행히도 익산에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관련된 유물과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문화유적지가 과거의 수학여행지(지식이 없었던 나에게는 단체사진 찍고 그냥 즐거웠던 수학여행이었다)가 아니라 이젠 사진 찍기 명소(포토 스팟)로 거듭나는 관광명소(핫 스팟)가 되고 있다.

 유적지에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 그 장소에 있었던 내 모습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에 남기고 친구에게 서로 알리곤 한다. 곧 방문객이 이젠 홍보맨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유물이나 유적지 훼손 우려로 폐쇄적인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문화유적지를 적극적으로 개방하며 야간문화행사나 대중문화행사(공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간혹 문화유적지 행사장에서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장소에 주인공 이야기가 깃들어 있지 않아 이 장소에서 왜 이런 문화행사가 열리는지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 장소만의 진정성을 찾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사람, 그 지역의 사람을 찾으면 다시 찾는 관광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익산을 둘러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곳곳에 깃들어져 있다. 오늘 만난 서동왕자와 선화공주는 익산시가 세계유산 도시임을 정말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익산시가 관광 도시가 될 수 있는 두 번째 요소, 바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