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의 한 장면은 우리 사회 일각의 민낯을 비췄다. 율사 박범계의 ‘선택적 정의’와 검찰의 수장 윤석열의 ‘선택적 의심’이 그것이다.

두 사람의 공방이란, 부적절한 검찰 수사에 대한 박범계의 공격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여당의 비판에 대한 윤석열의 방어로 집약된다.

두 공방이 품고 있는 공통분모는 ‘선택’이다. 입장에 따라 다른 정의를 선택하고, 입장에 따라 의심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그들은 서로를 규정한 것이다.

박범계의 말을 뒤집어보면 ‘정의’ 또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말이다. 윤석열에 따르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도 의심 할 수 있다,

정의와 의심은 선택 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은 생각할수록 심오하다. 또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른바 ‘정의’는 곧 통념이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정조를 생명처럼 여겼던 체제가 있었는가 하면, 성적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는 체제도 있다. 자본이 독점하는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자본의 지배를 제한하고 이익 분배주의를 추구하는 시대도 있다.

도덕이나 양심도 마찬가지다. 시대마다 요구하는 도리는 다르다.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정의라고 하지만 기실 정의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정의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합의하는 자들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정의를 마주 대할 때 종종 낯선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합의된 정의를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 다른 합의가 나오지 않는 한 정의는 두 개이거나 세 개일 수 없다. 입장에 따라 다른 정의를 정의라고 말하거나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정의를 공의롭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다. 정의가 양쪽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할 수 없더라도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고, 사회체제의 방향성이 되는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박범계와 윤석열은 국민의 생각을 교란하는 자들이다. 정의는 매번 시대의 선택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 하지만 합목적성을 담보하는 것이고 다수의 공감이 퇴색해 폐기되지 않는 한 그 지배력은 동시대 안에서 약화 될 성질이 아니다.

정의가 ‘합의’ 혹은 새로운 시대로의 ‘변환’을 거치지 않았는데 선택될 수 있다는 그들의 발상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합의 된 정의를 우리 사회 도덕률과 안녕의 지표로 삼아야 하며, 누구라도 그와 다른 정의를 정당화할 수 없다.

정의는 사회적 합의에 의하지 않고 선택 되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선택적 정의’는 반사회적인 언어다. 성립할 수 없는 말이며 ‘불의’다.

‘선택적 의심’도 그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공인들의 의심이란 합리적이어야 한다. 믿었던 대상의 행위를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달리 해석하면 혼란이 양산된다. 갈등과 반목의 근원이다. 우리의 안녕이란 다름 아닌 ‘객관적 의심’과 ‘대응’의 결과다.

근거 없는 불신은 소모적인 투쟁의 근원이다. 우리 사회와 인간들의 관계를 희화화하고 그 끝에는 블랙홀 같은 비극의 아가리가 있다. 마녀사냥의 표지이며 매카시즘의 시그널이다.

우리는 그런 광기를 마주했다. 그것도 우리 체제의 일탈과 오도를 막고 돌이켜야 할 국회에서 보았다.

문제의 본질은 남용이다. 힘을 절제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은 데에 있다. 그들은 선을 넘을 때 마다 ‘필요’를 내세운다. 그 필요는 ‘요구’다.

국민적 혹은 진영의 요구다. 이 요구는 매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사회적 분위기는 왕왕 조장 된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온통 국정 책임자를 향할 때 ‘국정농단’은 기막힌 분출구였다. 그 거대한 물길은 정권을 교체하는 가공 할 위력을 보였다.

이른바 ‘적폐 청산’은 ‘국정농단’을 만나 확장된 분노의 판과 정권을 교체한 환희의 판이 충돌하며 일으킨 지각변동이었다. 그 쓰나미는 우리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피할 겨를 없는 대재앙이었다.

전 정권은 부정하고, 마땅히 퇴출해야 할 낡은 것이며, 전 정권의 진영과 그에 우호적인 보수는 ‘적폐’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의 적폐 청산이 그러한 사회적 요구에 반한 것이 아니거니와, 적폐 청산이 새 정권의 핵심 국정 과제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시대의 담지자, 도착적 권력자

윤석열식 적폐 청산 혹은 수사 방법은 적법했더라도,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고 분란의 진원이었다. 이같이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상대적 소수를 유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적폐 청산 결과 새 정권은 거대 여당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윤석열이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 일가족을 수사할 때 새 정권과 여권, 그에 우호적인 진보는 윤석열의 검찰권 남용을 비판했다.

윤석열은 그저 윤석열일 뿐인데 그를 ‘선택적 정의론자’로 규정하고, 그를 두려워했다. 혹자는 윤석열을 검찰주의자라고 하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윤석열은 ‘도착적 권력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권력은 국민이 부여했고, 현 정권과 여권, 그에 우호적인 진보진영이 적극적으로 갖다 바쳤다.

이제 그는 정의를 선택 할 수 있는 자가 되었고, 진보도 보수도 두려워하는 권력의 칼을 누구보다 잘 휘두르는 절세 신공의 칼잡이가 되었다.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운석열은 가장 지지율이 높은 대선 후보가 되었고, 현 정권과 여권, 진보진영을 정의와 상식을 무너뜨리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스스로를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파괴를 막는 시대적 담지자로 천명했다.

윤석열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진보가 낳은 괴물이다. 쇠뿔은 단숨에 빼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진보의 허점을 가장 잘 파고들 제3 지대의 칼잡이 윤석열의 광기가 번득인다.

과잉의 폐해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적이 궁금해지는 오늘이다.